희망씨앗기금 2주년 행사
2019년 6월 9일6월 9일 오후 2시, 와세다대학도야마캠퍼스에서 희망씨앗기금 2주년 행사가 있었습니다. 1년 전에도 같은 장소에서 1주년 행사가 있었고, 이 자리에 김복동 할머니께서 참석을 하셔서 “우리는 촛불 하나로 대통령도 바꿨다"고 하시며 일본 시민들에게 힘을 내라고 응원을 했었던 행사입니다.
그리고 재일조선고급학교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을 하며 “기죽지 마라.” “희망을 가져라” 그렇게 격려하였습니다.
2주년이 되는 오늘, 그 자리에 윤미향 대표가 섰습니다. 김복동 할머니를 1992년 처음 알게 되어 할머니집에서 할머니의 아픈 이야기를 들었던 때로부터 1차 아시아연대회의에서 증언을 하고, 그 때 같은 고도라지아 수용소에서 만나 잠시 함께 있었던 최순남 할머니를 만났던 이야기… 그 이후 적극적으로 데모에 참석으로 하고, 1993년 오스트리아 비엔나 세계인권대회에 참석하여 증언하고 수많은 여성인권운동가들에게 피해자의 목소리를 전하고, 도쿄와 오사카에서 열렸던 제4차 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토론회에 북의 정문복 할머니와 참석한 이야기 등등…
1992년부터 99년 쉼으로 들어가기 이전의 삶, 쉼에서 다시 제2 활동기로 접어들어, 본격적으로 인권활동가로, 평화활동가로 선두에 나서게 된 이야기까지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의 삶에 대해 알렸습니다.
할머니와 함께 했던 28년 동안 함께 했던 시간들이 흩어져 있던 것을 다시 모으고, 그 기억들을 제 나름대로 조합하여 전했습니다. 윤미향 대표의 강연이 끝난 후, 요시미 요시야키 교수님이 할머니의 증언의 의미에 대해 강연을 해줬습니다.
요시야키 교수님은 윤미향 대표 강연에 ‘고도라지야’ 야전병원 대한 이야기가 있었는데, 고도라지아 야전병원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가장 북부에 있는 것으로 김복동 할머니는 마지막 수마트라섬에 있었다는 것을 확인해 주는 것이라고 확인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김복동 할머니는 문서로 제10육군병원의 용인으로 채용되었다고 유수명부에 기록이 되어 있는데, 일본군은 1944년 11월에, 유수업무 규정이라고 하는 것이 만드는데, 이것은 전쟁에서 전몰하게 되면, 가족들에게 지급해야 하는 급료에 대한 정보가 없어지기 때문에 유수명부를 작성하여 관리를 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할머니의 증언 중 ‘위안부’로 모집당할때의 상황, 중국 광동에서 처음으로 성병검사를 받고, 성폭행을 당하고, 자살을 시도했던 이야기가 갖고 있는 의미, 군위안소에서 어떤 상황이었는지에 대해서도 할머니 증언은 꽤 상세히 구체적이었다는 것 등을 해석해 주었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서면으로 질문을 했는데 사람들은 2015한일합의 과정에 대한 질문을 하고, 김복동 할머니가 베트남에 사죄하게 된 심경과 윤미향 대표의 생각을 물었고, 현재 생존자 상황, 재일조선학교를 지원할 수 있는 방법 등 고마운 질문도 해주셨습니다.
답변이 끝나고, 마리몬드 윤홍조 대표의 인사, 희망씨앗기금 양징자 대표의 활동 보고, 평화기행에 참여하여 희망씨앗기금의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청년대학생그룹의 송신도 할머니 사진전 홍보 등이 진행되었습니다.
평화기행을 통해 청년대학생들의 참여가 늘어나고있는 희망씨앗기금의 멋진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되어 매우 기쁜 행사였습니다. 교류회를 통해 더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앞으로도 무한한 희망이 잠재해 있는 희망씨앗기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