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우간다 활동 모음

2020년 5월 22일

정의기억연대는우간다 신의 저항군 내전 중 성폭력, 성노예 피해를 입은 여성들과 연대하기 위해 2018년부터 «웬드아프리카, 골든위민비전, 챤 르웨데 페» 3개 단체에게 나비기금을 정기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우간다 활동을 함께 모아보아요!

세계 무력분쟁 성폭력 생존자의 목소리

2018년 8월 22일

제6차 세계 일본군’위안부’ 기림일에는 세계 곳곳에서 무력분쟁 성폭력 근절을 위해 힘쓰는 우간다, 콩고, 북이라크, 코소보의 생존자, 전 UN 여성폭력특별보고관 라쉬다 만주, 무퀘게재단 활동가가 한국을 찾아오셨습니다. 할머니들과 연대하고, 일본군성노예제 문제와 관련 활동에 대해 배우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방법에 대해 함께 고민한 초청자 분들의 일정을 한 번 살펴볼까요?

8.12
한국에 제일 먼저 도착한 아칸 실비아씨께서는 마리몬드-SK Wyverns 콜라보레이션데이에 기념 시구를 하시고 세계일본군‘위안부’기림일과 세계 무력분쟁 성폭력 생존자를 위해 연대의 메시지를 전하셨습니다. 한 번도 시구를 해본 적이 없다고 하셨는데, 마리몬드 유니폼도 멋있게 소화하시고 기림일 일정을 소개하셨습니다.

8.13
초청자 분들께선 아침 일찍 평화의 우리집을 방문하여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와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당신과 같은 고통을 겪으신 생존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활동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은 고통을 겪은 시간과 장소가 다를지라도, 같은 고통으로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습니다. 오후에는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과 마리몬드 라운지를 방문하여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다양한 방법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8.14
초청자 분들께선 <73년간의 기다림, 마침내 해방! – 세계 무력분쟁 성폭력 생존자들의 목소리> 국제 심포지엄을 통해 생존자들의 용기 있는 목소리와 주변 사람들의 연대가 세상을 바꿀 힘이 된다는 것을 나눴습니다.

제1회 김복동 평화상 수상자인 Acan Sylvia씨는 김복동 할머니께 직접 상패와 꽃다발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참여한 촛불문화제에서는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미래 세대의 공연을 보며 때로는 눈물로, 때로는 환호로 감동을 표현하셨습니다. 콩고의 Tatiana Mukanire 씨가 발언을 통해 콩고의 상황과 한국에 와서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활동에 대해 배운 점, 그리고 할머니들과 연대하겠다는 뜻을 나누었습니다. 또한, 바쁜 일정 중에도 함께 준비한 노래를 선보이며 평화를 위해 함께 기억하고, 연대하고, 활동하겠다는 걸 보여주었습니다.

8.15
초청자 분들께선 세계연대집회/제 1348차 수요시위에 참여하였습니다. 북이라크 야지디족 생존자인 Salwa Khalaf Rasho씨가 할머니들과 함께하고, 세계 곳곳의 생존자들과 함께 하겠다는 연대발언을 해주셨습니다.

8.16

초청자 분들께선 국회, 외교부, 여성가족부와의 간담회에 임하며 일본군성노예제 문제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무력분쟁 성폭력에 대해 연대해야 한다는 뜻을 나누셨습니다.

휴식시간에는 인사동 관훈 갤러리에서 <진실, 정의, 그리고 기억> 전시를 관람하며 할머니들의 용기와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관련 운동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전시회 관람 후에는 인사동에서 한국 기념품을 둘러보았습니다.

8.17
대부분의 초청자 분들께서 출국하는 날이었는데요, 할머니들과 연대할 수 있어서,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세계 곳곳의 무력분쟁 성폭력 생존자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뜻 깊은 시간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8.18
마지막 초청자 Acan Sylvia씨와 함께 정의기억연대 사무실과 홍대입구역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Acan Sylvia씨가 이끄는 우간다 내전 생존자를 지원하는 Golden Women Vision에서 한국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며, 기회가 된다면 정의기억연대 활동가들도 우간다를 방문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2018 인도적지원 정책포럼 발표와 연사들의 방문

2018년 12월 4일

2018년 12월 3일, KCOC와 KOICA가 주최하는 2018 인도적지원 정책포럼 <인도적 지원과 분쟁 및 취약상황에서의 젠더폭력>이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관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인도적 위기 상황에서 Gender Based Violence(GBV, 젠더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 사회의 대응 체계를 점검하고, 로힝야 난민 사태에서의 성과와 과제를 파악하며, 분쟁하 성폭력 피해 여성을 지원하기 위해 활동해 온 한국 여성 운동의 경험이 어떻게 국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지 모색하는 자리였던만큼, 국내외에서 여성인권, 분쟁하 성폭력, 난민 지원 등 관련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시는 분들께서 발표해주셨습니다.

세션 3. 분쟁 하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한 한국 시민사회의 국제 연대 활동 경험과 교훈에서 정의연의 윤미향 대표는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 운동의 역사와 할머니들의 용기와 공감으로부터 시작한 나비기금에 대한 발표를 진행하였습니다. 나비기금에 대한 발표를 통해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 운동이 할머니들께서 피해자로서의 정체성을 넘어 다른 전시성폭력 피해 여성들과 공감하고 그들을 지원하는 훌륭한 여성인권운동가로 거듭나는 과정을 함께하는 운동이었음을 전했습니다.

나비기금 수혜단체인 골든위민비전의 대표이자 제1회 김복동평화상 수상자로서 지난 8월 일본군’위안부’기림일 때 한국을 방문했던 아칸 실비아 (Acan Sylvia) 씨는 다시 한국을 방문하게 되셨는데요, 이번 포럼에서는 나비기금을 통해 진행되는 골든위민비전의 활동을 소개하고, 현장에서 생존자들과 직접 일하는 활동가로서의 경험을 공유하였습니다.

활발한 토론을 마치고 실비아씨께서는 생존자들이 직접 만든 파우치를 선물해주시기도 하셨습니다.

포럼 다음 날인 12월 4일, 포럼 연사였던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로힝야난민대응 ISCG GenCap의 선임자문관 사이먼 오포랏 (Simon Opolot), UNFPA 콕스바자르 사무소의 전 GBV 서브섹터 코디네이터 사바 자리브 (Saba Zariv), Rohingya Women Welfare Society 대표 라지아 술타나 (Razia Sultana), 골든위민비전 (Golden Women Vision in Uganda) 대표 아칸 실비아 (Acan Sylvia) 씨께서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을 방문하였습니다.

박물관 관람 및 교육을 통해 일본군성노예제 문제에 대해 배우고, 간담회를 통해 할머니들의 용기와 시민들의 연대로 이어진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 운동을 각자의 운동으로 연결짓는 방법에 대해 함께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할머니들의 이야기들과 함께 일하는 생존자들의 이야기들이 겹치는 부분이 많다며, 아직까지도 강간이 전쟁무기로써 사용되는 현재의 상황이 무척 화가 나고 가슴 아프다고 눈물을 보이시는 연사 분도 계셨습니다. 생존자들과 가까이 일하는 활동가시니만큼 생존자들의 트라우마를 직접 듣고 접하는 일이 많아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더욱 와닿으셨던 것 같습니다. 생존자들이 용기내어 목소리 낸 아픔을 더 이상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는 운동으로 잇는 것은 진정한 연대를 통해서 일어난다는 걸 나누었습니다.

나비기금, 우간다로 날다! 1일차

2019년 2월 28일

북우간다 지역은 20년간 이어진 ‘신의 저항군(Lord’s Resistance Army)’ 반군과 정부군 간의 내전으로 인해 약 30,000명*의 어린이들이 LRA에 납치되어 소년병, 소녀병, 성노예 피해를 입었습니다. LRA는 자원하는 어른들이 줄자, 어린 아이들을 납치하여 잔인한 세뇌교육, 고문, 죽임을 통해 반군을 유지시키는 자원으로 삼았습니다. 특히 어린 소녀들은 낮에는 무거운 짐을 옮기는 짐꾼으로, 밤에는 반군의 지휘관들의 ‘아내’로 지내야 했습니다.

*30,000명이라는 통계마저 돌아 온 생존자를 바탕으로 한 통계이므로, 실제 피해자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합니다.

정의연은 참혹한 전쟁의 상처가 아직 선명하게 남아있는 우간다 내전에 대해 배우고, 생존자들을 위한 장기적인 지원 방안을 모색하고자 나비기금 수혜단체 방문을 2월 20일부터 26일까지 진행하였습니다.

  1. 우간다 굴루 정부 관계자, 골든위민비전 간담회

2월 22일, 새벽부터 엔베테를 출발해 6시간 만에 도착한 굴루에서 나비기금 수혜단체인 골든위민비전(Golden Women Vision in Uganda)에서 준비해 준 정부 관계자들과의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굴루 지역구 의장(Resident District Commissioner), 시의회 의원(Local Council Five Gulu District), 행정부처 담당관(Chief Administrative Officer) 등이 함께 한 자리에서 우간다 내전의 역사와 최근까지도 LRA에게서 도망쳐 오는 생존자들을 비롯하여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피해에 대해 우간다 시민단체들과 정부가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우간다 내전 중 아이들이 입은 피해는 크게 3종류로 나뉩니다:

  1. 납치 후 성폭행으로 감금 중 태어난 아이들(children born from captivity)
  2. 납치 후 성폭행 피해로 임신을 하게 된 어린 여성들(child mothers)
  3. 어린 나이에 납치 당한 피해자들(formerly abducted children)

20년 간 이어진 내전으로 인해 사회구조가 붕괴되었고, LRA가 북우간다 지역에서 정부군에 대항하며 생긴 반군 그룹인만큼, 우간다 정부가 피해자들을 지원하려는 노력은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또한, 워낙 오랜 시간에 걸쳐 광범위하게 피해가 일어났기 때문에, 전쟁피해에 대한 제대로 된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이에 정의연과 골든위민비전에서는 피해자 지원을 위해 우간다 정부에게 다음과 같은 노력을 함께 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1. 피해규모와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진상 조사
  2. 피해경험에 대해 증언할 수 있도록 지지하는 문화(Speak-out)
  3. 피해자 지원 사업을 위한 정부 및 국제사회에서의 다양한 로비활동

지난 8월 기림일 제1회 김복동평화상 수상자로서, 12월 KCOC 포럼 연사로서 한국을 두 번이나 방문한 골든위민비전의 아찬 실비아 오발(Acan Sylvia Obal) 대표님도 굴루 경찰과 지역 정부와의 긴밀한 협업을 통해 소외받은 전쟁 피해자들을 위해 힘쓸 것을 다짐하셨습니다.

이에 굴루에서도 27년 간 이어 진 수요시위와 최근 나비가 되어 날아가신 김복동 할머니를 기리는 수요기도를 드리며 연대하겠다고 약속해주셨습니다.

정의연은 감사의 뜻으로 작은 소녀상과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의 메시지를 담은 팔찌를 회의에 참석해 주신 분들께 선물했습니다.

간담회를 마치고 나와서는 아찬 실비아 오발 대표님이 나비기금으로 마련한 오토바이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동안 피해자 방문을 하면서 교통편이 없어 어려움을 겪었는데, 이제 오토바이로 피해자들을 만나고, 활발히 활동할 수 있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하셨습니다.

2. 우간다 나비기금 수혜단체 간담회

이후 또 다른 수혜단체인 웬드아프리카 사무실에서 나비기금 수혜단체 웬드아프 리카, 골든위민비전, 챤 르웨데 페가 모두 모여 각 단체에서 생존자 지원을 위해 진행하는 사업과 어려움, 그리고 생존자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웬드아프리카(Wend Africa, 대표 Jolly Grace Okot)는 2014년에 설립되어 소녀병, 성노예 피해자들과 수제작한 가방을 판매한 수익금으로 생존자들의 자활을 돕는 단체이자 사회적 기업입니다. 나비기금을 통해 생존자를 위한 직업 훈련, 생존자 자녀들을 위한 장학금 지원, 그리고 저축조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골든위민비전(Golden Women Vision in Uganda, 대표 Acan Sylvia Obal)은 지역별로 6개의 생존자 그룹을 지원하는 단체입니다. 생존자들과 비즈, 장난감, 케이크, 비누, 가방 등을 만들어 판매하여 생존자들의 생활 및 자녀 학비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또한, 생존자들을 대상으로 피해사실을 경찰에 신고하고,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교육하고 지원하는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챤 르웨데 페(Can Rewede Pee, 총무 Aber Rose)는 성노예 생존자들이 만든 자생그룹입니다. 챤 르웨데 페는 ‘No One Owns Poverty,’ ‘가난에는 한계가 없다’는 뜻으로 가난은 누구라도 덮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문구입니다. 납치된 여자아이들이 살아 돌아와도, 낙인 때문에 가족과 반군에서 주어진 남편에게 외면받고 힘들게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생존자들끼리 모여 저축조합을 운영하고 병아리를 키워 닭이 되면 판매하는 식으로 생계를 돕고 있습니다.

세 단체의 규모와 주요 활동이 다르지만, 생존자들이 지금 가장 필요로 하는 것에 대해선 함께 입을 모았습니다:

  1. 심리치료
  2. 여성이 자립할 수 있는 경제적 지원 (직업 교육 포함)
  3. 자녀들 학비

특히 어린 나이에 납치되어 학교를 다니지 못 했던 생존자들이 대부분인만큼,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자녀들은 학교를 다니면서 더 좋은 교육을 받고, 더 좋은 삶을 살길 바란다는 생존자들의 이야기는 꼭 당신이 하고 싶었던 공부를 일본군성노예로 끌려 간 피해 때문에 마치지 못 하여 돈이 없어 공부를 못 하는 학생들이 가장 마음 아프다고 하셨던 김복동 할머니의 말씀과 닮아있습니다.

정의연은 생존자들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꾸준히 이어 온 우간다 활동가들에게 28년 간 이어 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운동에 대해 나누고, 작은 소녀상,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의 말씀이 닮긴 팔찌, 그리고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운동을 소개하는 <25년 간의 수요일>을 선물했습니다.

서로 다른 곳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우간다 단체들과 정의연은 서로의 운동이 힘이 된다는 것을 확인하였고, 피해자들을 위한 정의가 이뤄지는 날을 함께 만들도록 노력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나비기금, 우간다로 날다! 2일차

2019년 3월 5일

굴루에서 맞는 두 번째 아침, 정의연 활동가들은 ‘신의 저항군(Lord’s Resistance Army)’ 내전에 의해 소년병, 소녀병 피해를 입은 시민들, 밤에 납치될까 두려워 밤마다 시내 버스정류장과 병원 지하에서 잠을 청하는 아이들(night commuters)을 조명하며 LRA 내전의 참상을 국제사회에 알린 과 LRA 성노예 생존자 Grace 씨의 이야기를 담은 를 시청하였습니다.

우간다 내전 중 일어난 인권침해와 전쟁범죄는 그 규모에 비해 국제사회에서 크게 주목 받지 못 했습니다. 하지만 과 같은 영화를 통해 국제사회에서의 우간다 내전에 대한 관심이 늘었고, 반군 리더 Joseph Kony의 처벌과 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이 더욱 활발하게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1. 웬드아프리카 방문 및 생존자 인터뷰

오후에는 웬드아프리카 사무실을 방문하였습니다. 웬드아프리카는 LRA 성노예 생존자 21명이 재봉사로 고용하여, 생존자들에게 직업 훈련을 제공하고 수제작한 가방을 판매하여 생존자의 경제적 자립을 꾀하는 사회적 기업입니다. 사무실 입구부터 생존자들이 제작한 다양한 가방과 장난감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웬드아프리카에서 운영하는 저축조합인 (Village Savings and Loans Association, VSLA)에 대한 설명을 총무 Catherine 씨와 Invisible Children 및 웬드아프리카 활동가 Comfort 씨에게서 들었습니다. 우간다 은행에서 돈을 빌리면 높은 이자가 붙기 때문에, 웬드아프리카 회원들은 저축조합을 통해 1) 저축(2주에 한 번씩 저축하여 1년 뒤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음), 2) 복지(빌려주고, 이자를 회원들끼리 나눠 가짐), 3) 사회복지(장례비, 병원비 등 긴급지원) 활동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회원마다 장부가 있고, 입출금 내역을 꼼꼼히 기록해둠으로써 보다 효율적인 저축 습관을 기를 수 있도록 한다고 합니다. 생존자들이 급하게 돈이 필요한 경우는 1) 가족이 아픈 경우, 2) 자녀들 학비, 3) 사업 운영이라고 합니다.

저축조합에 3개월 동안 참여하면, 개인 사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창업 훈련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창업 훈련을 받은 생존자들은 바나나 장사, 비즈 장사, 가방 장사 등 다양한 방법으로 생계를 유지해나간다고 합니다.

웬드아프리카로 전해진 나비기금은 이러한 저축조합 훈련에도 쓰이고 있어 생존자들이 지지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이후 생존자들과의 인터뷰는 웬드아프리카의 Comfort 씨가 통역해주셨습니다.

  • Anena Grace

  • Adok Agnes

  • Laker Lucy

  • 마가렛 씨의 집

  • Margaret

-아니나 그레이스 (Anena Grace, 32세): 영화 의 주인공을 만났습니다. 2002년 13살이었던 그레이스 씨는 밤 11시경 집에서 자던 중에 납치되어 9개월이 지난 후에야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LRA 지휘관의 다른 아내의 아이를 돌보는 일을 했다고 합니다. 2004년 LRA와 정부군의 전투 중 아이를 업고 도망가는데 정부군이 던진 폭탄에 아이가 맞았다고 합니다. 그레이스 씨는 아이가 죽은 줄도 모르고 뛰다가, LRA 지휘관이 아이를 떼어주고, 4일 연속으로 피가 나던 그레이스 씨를 치료해주었다고 합니다. 충격으로 5일 동안 손이 마비되고, 시력도 나빠지고, 몸을 일으켜 세우기 조차 힘들었다고 합니다. 약 5개월 정도 후에 낫기 시작하였지만, 여전히 상처와 가슴의 통증은 남아있다고 합니다. 2005년 탈출하여 Gusco 재활센터에 들어간 그레이스 씨는 임신을 하고, 탈출할 때 생긴 총상으로 인해 목발도 짚고 있었습니다. 돌아오니 납치되지 않았던 친구들은 자신과 다르게 학교에 다니고 있고, 자신이나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자살 시도도 했다고 합니다. 죽은 아이의 엄마였던 또 다른 LRA 성노예 피해자는 아이 대신 그레이스 씨가 죽었어야 했다며 비난하였고, ‘남편’이었던 LRA 지휘관의 가족이 찾아오기도 하여 그레이스 씨는 찾아올 바엔 아이를 데려가라며 싸우는 둥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재활센터에서 지내던 중 Invisible Children 제작자들과 만나게 되어, 다리 수술도 받게 되고 학교를 다닐 장학금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레이스 씨는 태어난 아이의 이름을 Apwoyorwot, ‘신이시여 감사합니다’,로 지었습니다. 그레이스 씨는 자신을 구박했던 또 다른 LRA 성노예 피해자인 아이 엄마 때문에 힘들었지만, 그도 자신과 같은 피해자라는 걸 인정하고 용서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LRA 반군에 대한 법적 처벌과 시민들을 보호하지 못 한 정부군의 배상이 이뤄졌으면 좋겠으나, 가해자가 대부분 죽고 납치된 아이들이 가해자로 떠밀어진 상황에서 배상이 어떻게 이뤄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복잡한 심경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레이스 씨는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과 같이 어린 나이에 성폭행으로 임신한 여성들(child mothers)이 생계를 이어나가고, 자녀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도록 지원해달라는 부탁을 하였습니다.

-아독 아그니스 (Adok Agnes, 36세): 아그니스 씨는 1995년 12세 때 납치되어 2011년에 돌아왔습니다. 14세 때 25세 반군 지휘관에게 골라졌고, 거절하면 죽임을 당하기에 죽기 싫어서, 혹시 그와 있다보면 탈출할 기회가 생길까 ‘아내’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감금 중에 낳은 아이들(children born from captivity)는 6명 입니다. 2011년 돌아오니 부모님은 이미 LRA에 의해 돌아가셨고, 함께 끌려갔던 친척 4명 중 2명은 죽어서 그 친척 가족이 아그니스 씨에게 왜 자신의 자식이 대신 죽어야 했냐며 비난했다고 합니다. 이에 Gusco 재활센터에서 머물며 재봉기술을 배웠다고 합니다. 이후 이모네 집으로 갔으나, 이모부가 폭력적으로 굴어 빠져나와 다른 단체에서 머물다 웬드아프리카를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처음 돌아왔을 때는 너무 말라서 이웃들이 에이즈에 감염된 것이라며 수근대기도 하여 자살 생각을 할 만큼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신과 같은 어려움을 겪은 여성들과 함께 지내게 되면서 살아갈 힘을 얻었다고 합니다. LRA 반군 리더가 아직 잡히지 않은 상황이지만, 반드시 피해자들을 위한 정의가 실현되어야 하며, 정부의 경우 자녀들을 위한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는 걸 강조하였습니다. 특히 학교에서 LRA 내전의 역사와 피해를 가르쳐야 아이들이 폭력이 아닌 바른 길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평화교육을 통해 아이들이 더 나은 직업을 갖고 더 나은 미래를 누릴 수 있길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아그니스 씨의 아이들은 감금 중에 LRA의 잔인한 폭력을 보고 자랐기에 사람을 보면 도망가고 숨었다고 합니다. 학교를 다니면서 점차 나아졌으나 아직 트라우마 치료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아그니스 씨의 ‘남편’이었던 반군 지휘관은 수단에서 다른 아내와 살고 있다고 합니다. 감금 중에 생긴 ‘아내’와 돌아오더라도, ‘남편’ 가족 측에서 거부하는 등 LRA 납치 피해자 사이에도 남녀차별이 있다고 합니다.

-레이커 루시 (Laker Lucy): 1993년 14세 때 끌려 간 루시 씨는 2000년이 되어서야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끌려가서 남수단으로 걸어서 이동하는 동안, 물도,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 해 오줌을 마시며 생존했다고 합니다. 65세 LRA 2등 지휘관의 34명의 ‘아내’ 중 한 명이 되었는데, 그가 머리에 총을 겨눈 채로 성폭행을 하였고, 이후 에이즈에 감염되었다고 합니다. 1997년 ‘남편’이 사망하자, LRA 반군 리더 Joseph Kony가 2등 지휘관의 아이가 없는 어린 ‘아내’들을 놓아주었다고 합니다. 이 때를 틈타 다른 ‘아내’들과 탈출을 시도하는데, 한 번은 LRA 반군에게 붙잡혔으나 이미 에이즈에 걸렸고, 도저히 아이들을 살릴 방법이 없다고 사정하여 풀려났다고 합니다. 이후 수단 군인 5명과 동행하며 도망치는데, LRA 트럭이 뒤쫓아와 숨기도 하고, 군인과 부부인 척하고 아이가 아프다고 하여 빠져나오기도 하였습니다. 가까스로 빠져나와 수단 군인이 비행기로 우간다로 이송되는 걸 돕고, 북수단 대통령이 북수단에 남길 권했으나 이를 거절하고 수단 내 UN캠프에서 우간다로 돌아갈 수 있을만큼 회복했다고 합니다. (당시 LRA 반군 리더 Joseph Kony는 수단 정부에게 우간다에서 학대 받은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을 따르는 것이라고 거짓말을 하여 수단 정부에서는 피해자들이 우간다로 돌아가는 걸 위험하다고 했다고 합니다.) 이후 Gusco 재활센터에서 지내다 에이즈 검사를 받게 되는데, 양성이라는 결과에 모든 것이 끝났다고 자살까지 생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곁에서 위로해주셨고, 2006년부터 ARV를 처방받아 먹기 시작했습니다. 루시 씨는 납치되어 소년병/소녀병으로 싸우도록 떠밀려진 LRA 보다 시민들을 보호하지 않은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정부 캠프 바로 옆에서도 시민들은 LRA 반군에 의해 납치되엇다고요. 이에 정부가 제대로 사죄하고 배상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또한, 돌아왔을 때 지원이 부족하여 자신이 학교로 돌아가거나, 자녀의 학비를 지원받거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했는데, 이에 감금 상태에서 돌아 온 피해자들 모두가 교육을 받을 수 있길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마가렛 (Margaret): 마가렛 씨가 사는 집을 방문하였습니다. 흙벽으로 되어있고, 지붕은 지푸라기로 되어있는 집은 비가 오면 물이 새고, 방이 따로 없어 천으로 방 구분을 해두었습니다. 화장실은 동네에 있는 공용 화장실을 사용하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마가렛 씨는 한 달에 8달러 정도의 임대료를 내고 집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마가렛 씨는 1992년 14살 때 납치되어 2002년에 아이 3명과 돌아왔습니다. 납치된 지 3개월 후 탈출 시도를 하였으나, 막대기로 100대를 맞아 기절하고, 함께 탈출을 시도했던 친구는 참수당하였다고 합니다. 이후 우간다에서 수단으로 이동하는 LRA의 총탄을 옮겨야 했습니다. 임신을 하니 일을 안 시키고 수단에 남겨졌습니다. 2002년 지휘관이 못 걷는 아이가 있는 여성들을 풀어주었고, 우간다 정부군이 이들을 데리고 굴루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이후 Gusco 재활센터에서 지내던 중 아이가 앓다가 세상을 떠났고, 재봉 기술을 배워 Invisible Children과 웬드아프리카에서 지원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가족이 다 납치되었어도, 혼자 살아남으면 자신 때문에 가족이 죽은 거라며 비난하고, 납치된 후 다른 가족이 피해를 입으면 반군을 끌어들였다며 모함했다고 합니다. 이제는 지원단체에서 피부색이 밝은 사람들이 집을 방문하면, 돈을 받은 게 아니냐며 험담을 한다고 합니다. 마가렛 씨는 재봉 기술로 지원단체와 일하게 되었고, 집을 얻고, 자녀들의 학비를 내고 있습니다. 이에 웬드아프리카에서 운영하는 저축조합이 더 활발해질 수 있도록 지원을 부탁했습니다. 또한, 시민들을 보호하지 않은 정부는 책임을 다해야 한다며 배상은 물론, 자녀들 학비와 피해자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자원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의 일본군성노예 피해자들 또한 일본정부의 제대로 된 사죄와 배상을 받길 바란다고 연대의 뜻도 전했습니다.

2. 챤 르웨데 페 방문 및 생존자 인터뷰

웬드아프리카 생존자들과의 인터뷰가 길어져서, 예정보다 늦게 챤 르웨데 페를 방문했습니다. 챤 르웨데 페의 여성들은 토요일 저축모임을 마치고 정의연 활동가들을 큰 환호와 노래로 맞아주셨습니다.

챤 르웨데 페는 나비기금을 통해 닭을 사서 회원들끼리 나누어 기르고 다시 판매하여 수익금을 내고, 저축조합 운영을 통해 자녀들의 학비를 내고, 기록용 카메라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조그만한 밭을 임대했다고 합니다. 또한, 생존자들이 함께 비즈와 가방을 만들어 시장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생존자들이 제작한 가방을 판매할 시장도 적고, 자녀들의 중고등학교 학비도 대기 힘든 상황이며, 생존자들을 위한 집은 커녕 땅도 구하지 못 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 Ajok Poline

  • Aber Rose

  • Adong Florence

-아족 폴린 (Ajok Poline): 1995년 13살에 납치되어, 바로 ‘남편’이 생긴 폴린 씨는 성폭행을 견디기 무척 힘들었다고 합니다. LRA는 임신한 상태의 폴린 씨를 우간다에서 수단까지 걷게 하였고, 이 과정에서 출산을 해도 바로 걸어야 했다고 합니다.
물이 없어 소변을 마시게 해달라고 빌어야 했습니다. 여성들에게는 나무를 자르도록 시켰는데, 자른 나무를 매로 써서 기절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납치되어 소년/소녀병으로 살인과 전투 훈련을 받은 아이들은 돌아오더라도 가족이 거부하여 시골에서 살 수 없어 시내로 온다고 합니다. 아촐리족 (Acholi, 북우간다 부족) 문화에서는 아이가 아버지와 사는 편이 나은데, 감금 중에 낳은 아이도 돌봐주겠다고 하던 새남편도 아이가 생기면 이를 거부한다고 합니다. 이에 집도 없고, 교육도 받지 못한 여성들이 자녀들에게 어떻게 해서든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려고 하지만 어렵다고 합니다.

-아동 플로렌스 (Adong Florence): 플로렌스 씨는 아이 3명과 돌아왔는데, 아이들이 ‘집에 가고 싶다’고 한다고 합니다. 한 번은 딸이 할머니(플로렌스 씨 어머니)에게 찾아 갔는데, 플로렌스의 형제가 쫓아 냈다고 합니다. 아버지를 찾아가도 ‘땅이 없으니 아빠를 찾을 자격도 없다’며 쫓겨 났다고 합니다.

챤 르웨데 페는 회원 모두가 LRA 성노예 생존자인 자생그룹으로, 모임 장소도 동네에 있는 나무 아래나 비가 오면 동네 주민의 집을 빌려 사용하고 있는 등 어려움이 많습니다. 모임 중에 비가 와서 정의연 활동가도 함께 건물로 들어갔지만, 전기도 수도도 없는 컴컴한 건물 안에는 회원들 모두가 들어올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우리는 당당하다. 우리는 목소리를 내는 게 두렵지 않다.’ 라고 입 모아 말하는 생존자들의 모습이 마치 어둠 속에서 빛을 찾는 것 같았습니다.

3. 우간다 국회의원과 야당 대표 저녁식사

긴 일정을 마치고 늦은 밤, 웬드아프리카 Jolly 대표님이 준비하신 우간다 국회의원과 야당 대표와 저녁식사 자리를 가졌습니다. 정의연 활동가가 방문하기 전 주에 우간다 국회에서 우간다 내전 피해자를 보호하자는 결의안이 통과되었다고 합니다. 결의안이 준비된 과정에 대해 배우고, 일본군성노예 문제해결을 위해 미국, 유럽, UN 등 다양한 곳에서 결의안을 통과시킨 정의기억연대의 활동을 나누며 우간다 내전 피해자 지원을 한 단 계 더 발전시킬 방법을 함께 고민했습니다.

나비기금, 우간다로 날다! 3일차

2019년 3월 15일

우간다 굴루에서의 일정 마지막 날인 2월 24일 일요일, 정의연 활동가들은 나비기금 수혜단체인 골든위민비전에서 생존자들을 만나고, 제1회 김복동평화상 수상자인 아찬 실비아 골든위민비전 대표님이 수상금으로 장학금을 전달한 학생들을 만났습니다.

  • 김복동평화상 상패를 든 Acan Sylvia Obal 대표

  • 비가 와서 건물로 뛰어가는 학생들

정의연 활동가들을 보고 다들 환호와 노래 공연으로 맞아주셨습니다. 생존자들이 LRA 내전 피해자로서 겪은 고통과 살아 돌아와서 사회의 낙인 때문에 겪은 고통을 소개하는 연극 공연도 준비해주셨습니다.

작년 8월 아찬 실비아 대표님께 수여된 제1회 김복동평화상 수상금은 200여 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지급되었습니다. 학비가 없어 학교를 가지 못 했던 학생들이 교육을 받게 되었다며 고맙다고 하시는 모습을 김복동 할머니께서도 보셨다면 얼마나 좋아하셨을지 잠시 생각했습니다. 정의연 활동가들은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 말씀이 담긴 팔찌, <25년간의 수요일> 영문판, 작은 소녀상을 학생들에게 선물했습니다.

  • 생존자들이 만든 비즈 목걸이와 팔찌

  • 골든위민비전 사무실

  • 점심시간에 줄을 선 골든위민비전 회원들

골든위민비전에는 총 5개의 지역모임이 있으며, 청소년 모임은 1개로 골든위민비전 사무실에서 다 같이 모인다고 합니다. 청소년 모임을 통해 감금 중 태어나거나 전쟁고아가 된 아이들이 함께 모여 놀고, 이야기하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준다고 하네요. 정의연 활동가들이 방문한 골든위민비전은 여섯 개의 모임을 연결해주고, 총 200여 명이 넘는 회원들을 지원하는 본부 같은 느낌입니다. 경찰에 LRA 반군으로부터 탈출한 생존자나 가정폭력에 대한 신고가 들어오면 골든위민비전에서 상담을 하고, 골든위민비전은 환자들은 지역 병원에 연계해 치료와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합니다. 회원 3/4 정도가 HIV/AIDS 환자이고, 정부에서 약을 무료로 제공하지만 가난으로 인해 제대로 된 끼니를 챙겨먹지도 못 하는 생존자들은 약을 먹어도 치료를 이어나가기 버거운 상태입니다.

골든위민비전은 아촐리족 왕의 사유지에 있는 건물을 무료로 임대하여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생존자들과 아이들이 나무 아래에서 비를 맞으며 모임을 하는 걸 보고 아촐리족 왕이 공간을 제공했고, 비가 새지 말라고 지붕을 얹었습니다. 하지만 비싼 전기세 때문에 콘센트 하나를 사용하지 않고, 벽에는 금이 가는 등 보수가 필요합니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니 생존자들이 만든 비즈와 가방, 아찬 실비아 대표님이 한국에 오셨을 때 정의연에서 전달한 작은 소녀상과 김복동 할머니의 미소가 새겨진 제1회 김복동평화상 상패가 저희를 맞아주었습니다. 아찬 실비아 대표님은 김복동 할머니의 부고 소식을 듣고 가슴이 아파 며칠이고 울었다며, 소중한 사람을 추모하는 아촐리족 문화에 따라 김복동할머니를 기억하기 위해 머리를 짧게 자른 것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2018년 기림일 때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를 뵈었을 때 희망을 갖고 살라고 응원해주시고, 따뜻하게 포옹해주신게 기억난다며, 함께 김복동 할머니를 기억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후 진행된 생존자 인터뷰는 골든위민비전의 Samuel 씨와 아찬 실비아(Acan Sylvia) 대표님이 통역해주셨습니다.

  • Aneno Margaret

  • Margaret 씨가 파는 바나나

  • Lanyero Grace 씨와 아이들

  • Lanyero Grace

  • Anek Evelyn

  • Evelyn 씨의 나비기금으로 산 의족

  • Aciro Rose

  • Acan Evelyn

  • Acan Evelyn 씨가 만든 인형

-아니노 마가렛(Aneno Margaret): 1993년 3월 4시쯤 초등학교 3학년(11살)이었던 마가렛 씨는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중 납치되어 11년 만인 2004년, 22살 때 돌아왔습니다. 마가렛 씨는 LRA 반군에 의해 우간다에서 남수단까지 1주일 만에 이동하면서 낮에는 반군이 마을에서 훔친 식량 등을 옮기고, 밤에는 성노예로 지내야 했습니다. 수단에 도착해서는 하루밤 자고 다음 날 총을 받은 후 훈련을 받았다고 합니다. 마가렛 씨는 LRA 반군과 정부군 간의 전투 중 총에 맞아 왼팔을 잃었고, 가슴에도 총상이 남았습니다. 남수단에서 우간다 정부군을 통해 비행기를 타고 감금 중에 낳은 아이들 2명과 함께 돌아왔고, Gusco 재활센터에서 6개월 간 있다가 골든위민비전의 아찬 실비아 대표님을 만나 상담을 받아, 골든위민비전가 함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마가렛 씨의 경우 가족과 다시 살 수 있었고, 새로 결혼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새 남편이 감금 중에 낳은 아이들을 싫어하고 가정폭력을 저질러 현재 총 4명의 아이들과 함께 살며, 집세도 내고 생계도 이어나가야 하는 상황입니다. 골든위민비전에서는 왼팔이 없기 때문에 골든위민비전에서 비즈 공예를 하는 대신 거리에서 바나나를 팔러 다닙니다. 또한, 마가렛 씨는 아직도 총상으로 인한 가슴 통증도 심하게 겪고 있습니다. 마가렛 씨는 아이들과 함께 살 수 있는 쉼터와 아이들을 위한 학비 지원이 가장 필요하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공부를 해야 자신들의 권리를 알고 제대로 된 직장을 얻어 희망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기 때문입니다. 배상에 대해서는 우간다 정부군, 우간다 경찰, LRA군 중 누가 팔을 쐈는지 모르겠으나, 생존자들의 권리를 되찾을 수 있는 배상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라녜로 그레이스 (Lanyero Grace): 사무실 밖에 아이들과 함께 있던 그레이스 씨를 만났습니다. 그레이스 씨 품에 안긴 막내는 3살인데 영양실조로 제대로 걷지도, 말을 하지도 못 한다고 합니다. 그레이스 씨가 막내와 함께 사무실로 들어왔고,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2000년, 15살이었던 그레이스 씨는 밤에 집에서 자던 중에 동네의 다른 여성 2명과 납치되었습니다. 이후 LRA 반군이 훔친 식량 등 무거운 짐을 옮기며 먼 거리를 걸어야 했습니다. 감금 중에 함께 있었던 여성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모두 성폭행을 당했고, 그레이스 씨는 집단성폭행을 당했습니다. 2006년 우간다 정부군과 LRA 반군 사이 전투가 있었을 때 정부군이 그레이스 씨를 구출하여 아이를 임신 한 상태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구출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부모님이 그레이스 씨를 데리러 와 부모님과 함께 살았으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는 새 남편을 만났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LRA 반군 피해를 입지 않았던 남편에게 피해사실을 숨기고 결혼했으나, 이를 알게 된 남편이 5명의 아이들과 그레이스 씨를 두고 수단으로 떠났다고 합니다. 평생을 함께할 줄 알았던 남편도 떠나고, 남편의 부모도 남편과 그레이스 씨 사이의 막내 딸이 장애를 가진 걸 알고 거부했다고 합니다. 이후 이웃집을 전전하면서 살다 골든위민비전에 쉼터를 구하기 위해 찾아왔다고 합니다. 그레이스 씨는 아이들 5명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 모두 학교에 다니지 못 하고 있고, 12살 첫 째는 학비를 낼 수 없어서 학교에서 쫓겨났습니다. 첫 째가 학교로 돌아갈 수 있도록 아찬 실비아 대표님이 학교장님과 대화하는 노력을 하고 계시다고 합니다. 그레이스 씨는 이웃집에서 팬케이크를 만드는 방법을 배워 장사를 하지만, 집세(10,000우간다실링/월)를 내거나 생계를 이어나가는데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골든위민비전에서 무료 배식을 할 때 먹고, 집에서는 음식이 없어 굶는다고 합니다. 배가 고픈 생존자들은 큰 쥐를 잡아먹는데, 쥐를 잡으려고 불을 질렀다가 집이 타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때문에 그레이스 씨는 아이들이 굶지 않도록 여성들에 대한 경제적 지원과 쉼터가 가장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레이스 씨가 잠시 지낸 임시쉼터는 파파야 나무로 만들어져 비가 다 새는 둥 환경이 열악하였기에 학교에 가지 못 하는 아이들이 안전하게 머무를 수 있는 쉼터가 절실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레이스 씨는 한국사람들에게 여성들이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그리고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레이스 씨는 LRA반군과 우간다 정부 같은 가해자에 대한 처벌도 이루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습니다. LRA반군이 아니었다면 그레이스 씨가 고향을 떠날 일도 없었고, 이 때 정부군은 전혀 피해자들을 지원하지 않았다고요. LRA반군에 의해 납치되었던 사람들은 언제 LRA반군들이 다시 찾아올까 두려움 속에 산다고 합니다.

-아넥 에블린 (Anek Evelyn): 1991년 9살 때 납치된 에블린 씨는 LRA반군에 의해 왼쪽 귀가 잘리는 고문을 받고, 2003년 탈출해서 집으로 돌아가던 중 지뢰를 밟아 왼발이 잘렸습니다. LRA반군은 마을에서 훔친 음식들을 담은 무거운 짐을 옮기며 먼 거리를 이동하게 했습니다. 감금 중이던 16살에 첫 아이를 낳았고, 총 세 명의 아이들과 돌아왔습니다. 병원에 입원했다가 집으로 돌아가니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감금 중에 낳은 아이들은 LRA 반군이라며 쫓아냈습니다. 새 남편은 한 쪽 다리가 없다고 에블린 씨를 학대하고, 감금 중에 낳은 아이들을 쫓아내려 하고, 결국 떠나갔다가, 에블린 씨가 나비기금으로 의족을 구해 두 발로 걷게 되니 다시 돌아왔다고 합니다. 에블린 씨는 아이들과 함께 오두막을 임대하여 살고 있지만, 집주인마저 감금 중에 낳은 아이들은 LRA반군이라고 쫓아내려 한답니다.

에블린 씨는 사람들이 에블린 씨의 이야기를 어떻게 기억했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삶이 힘들고 살 이유가 갈수록 찾기 힘들지만, 골든위민비전에서 심리지원을 받거나 아이들을 볼 때면 조금 더 나아진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에블린 씨는 감금 중에 낳은 아이들과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쉼터,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음식,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학비가 가장 필요하다고 합니다. 특히 아이들을 위한 장학금이 생기면 아이들도 교육을 받고 직업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을 얘기했습니다. 김복동할머니께서 “다시는 우리와 같은 피해자가 생기면 안 된다” 라고 하신 것처럼, 에블린 씨도 “그 누구도 나와 같은 고통을 겪으면 안 되다"는 말도 남겼습니다.

-아치로 로즈 (Aciro Rose): 1992년 10월 9살이었던 로즈 씨는 해 뜰 무렵 굴루시내에서 20분 거리인 알라갈룸 플라자에서 엄마와 형제,자매들과 있던 중 납치되었습니다. 이 때 형제 2명과 자매 1명과 함께 납치되었는데 모두 LRA 반군에 의해 죽고 로즈 씨만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LRA 반군은 처음에는 로즈 씨에게 길 안내를 시켰는데, 로즈 씨가 모른다고 하면 뺨을 수 차례 때렸다고 합니다. 또한 마을에서 닭을 훔치면 닭을 죽이도록 했습니다. 이후 LRA 반군은 어린아이였던 로즈 씨가 리더에게 적합하다고 하며 끌고 갔습니다. 로즈 씨가 거부하자 Joseph Kony 는 100대를 때리라고 명령했고, 다 맞은 로즈 씨는 그의 방으로 끌려갔지만, 너무 지쳐있어 다시 끌려나왔습니다. 이후 로즈 씨는 LRA 반군 리더인 Joseph Kony 의 50명의 ‘아내’ 중 1명이 되었는데요, 밤에는 성폭행을 당하고 낮에는 반군의 짐, 무거운 총, 그리고 감금 중에 낳은 아기를 모두 업고 하염없이 걸어야 했습니다. 수단에 갔을 때는 다른 무장단체인 Dinkers의 위협 때문에 LRA 반군의 감시는 더욱 험해졌고, 그룹에서 한 명이 사라지면 그룹 전체가 맞아야 했습니다. 감금 중에 낳은 3명의 아이들(지금은 첫째 17살, 둘째 13살, 셋째 12살)과 돌아 온 로즈 씨는 새로운 남편을 만나 이제 총 5명의 아이들을 키웁니다.

피해자 쉼터였던 Gusco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 제대로 된 심리지원도 받지 못 하였고, 집에 돌아가니 부모님은 이미 돌아가시고, 친척들은 로즈 씨 아버지의 땅을 독차지하기 위해 로즈 씨가 반군들을 불러들일거라며 쫓아냈다고 합니다. 새 남편도 일주일에 한 번 집에 오는데, 어디 다녀왔냐고 물으면 때리는 등 가정폭력을 저지른다고 합니다. 로즈 씨는 골든위민비전에서 비즈를 만들거나, 물을 거리에서 팔거나, 이웃집에서 설거지나 빨래를 해서 생계를 이어나가지만, 집세(20,000우간다실링/월)를 내고 아이들의 병원비나 학비를 대기에는 많이 힘듭니다. Gusco에서 로즈 씨는 적극적으로 기술을 배웠고, 골든위민비전에서는 트라우마를 견디기 위한 심리지원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로즈 씨는 골든위민비전에서 만난 생존자들과의 모임 덕분에 자살에 대한 생각을 이겨내었고,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로즈 씨는 골든위민비전에 전달되는 나비기금이 생존자들에게 큰 희망이 된다며, 앞으로도 골든위민비전과 실비아 대표님에 대한 지지를 부탁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돕겠다면서, 한국사람들에게도 우간다에 가족이 있다고 생각하고 언제든 방문하라고 합니다. 또한, 아이들이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나라를 바꿀 수 있도록 학비에 대한 지원도 부탁했습니다.

-Acan Evelyn (아찬 에블린): 1995년 11살 때 끌려간 에블린 씨는 나이가 많은 반군 지휘관에게 배정되었으나, 나이가 너무 어리다고 생각했는지 반군의 짐을 옭기거나 요리 등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반군이 판단하기에 성적으로 성숙되었다고 생각했던 나이가 되자, 지휘관의 ‘부인’ 중 한 명이 되어 성노예로의 삶을 강요받았습니다. 2004년 우간다 정부군과 LRA 반군 사이의 전투 때 혼절 상태에서 구출되어 돌아온 에블린 씨는 다리의 총상 때문에 아직도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부모님을 찾기 위해 병원에 있을 때 라디오 방송도 하였으나, 친척들이 찾아와서 다리가 나으면 돌아오지 말라고 했다고 합니다. 퇴원 후 감금 중에 낳은 Amone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으나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친척들은 우간다 정부가 지은 난민캠프에 있었으며, 이후에는 아이가 자라면 땅을 뺏길까봐 쫓아냈다고 합니다. 또한 LRA반군에 의한 납치피해자이고 ‘남편’이었던 반군 지휘관이 돌아와 아찬 에블린 씨와 감금 중에 낳은 아이 Amone를 함께 돌보겠다고 하였으나, 아찬 에블린 씨가 다리를 다친 걸 알고 같이 있기 싫다며 도망갔다고 합니다.

아찬 에블린 씨는 돌아와서 새 남편이 두 명 있었는데요, 첫 남편은 감금 중에 낳은 Amone를 싫어하고 쫓아내려고 했으며, 두 번째 남편은 아찬 에블린 씨가 LRA 반군 피해자라는 걸 알고 임신한 아찬 에블린 씨를 버리고 떠났다고 합니다. 이후 오두막을 빌렸으나, 음식도 제대로 먹기 힘들고 집주인이 쫓아내려 하여 골든위민비전에서 도와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골든위민비전에서 재봉 기술을 배워 기린 인형도 만들고 활발히 활동하고 있지만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쉼터가 절실합니다. 그래서 아찬 에블린 씨는 다른 생존자들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을 위한 학비와 쉼터에 대한 지원을 부탁했습니다. 우간다 정부에서는 내전 피해자들을 보호하지도, 관심을 갖거나 지원을 해주지도 않으니, 다른 나라 정부에서라도 우간다 내전 문제를 제기해 우간다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부탁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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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후에는 골든위민비전에서 선물을 전달해 주셨습니다. 생존자들이 직접 만든 비즈 공예는 종이 달력을 오려서 말은 다음, 불에 구워서 비즈로 만든 것으로, 목걸이 하나를 만드는데 2주가 걸린다고 합니다. 골든위민비전 활동가들과 기념사진을 마치고 아찬 실비아 대표님과 저녁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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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간다 내전은 20년 간 이어지면서 북부 우간다 지역에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붕괴된 사회 구조와 침해된 인권은 아직 복구되지 않았고, 피해자들은 LRA 반군에게서 살아돌아와도 다시 가난과 폭력, 차별 속에서 고통 받고 있습니다.

아찬 에블린 씨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같이 LRA 반군에 의해 납치된 피해자라도 남성은 반군 지휘관이 되거나 돌아와서 우간다 정부군에 모집되어 직업군인이 되지만, 여성은 성노예로 지내다가 돌아와서 사회에서 무시당하고, 가족에게 버림받거나 생존을 위한 결혼 생활을 이어가곤 합니다. 이렇듯 여성 피해자들은 다시 성폭력에 노출되기 쉽습니다. 우간다 정부나 국제인권단체들이 세운 난민캠프에 있던 사람들은 LRA 반군의 납치는 피했으나, 여성들은 캠프 안에서 시민이나 다른 난민에게 성폭행을 당하거나, 성관계를 일찍 시작하여 사회로 돌아와서는 다른 일을 구하지 못 하고 성매매 피해를 겪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어쩌면 절망스러울 정도로 복잡하게 얽힌 상황 속에서도 피해자들은 생존을 이어갈 수 있는 경제적 지원, 교육을 통한 사회변화, 우간다 정부와 LRA 반군에 대한 처벌과 책임이행에 목소리를 모았습니다. 이런 모습이 일본군성노예 피해를 입고 겨우 한국으로 돌아와, 냉담한 한국 사회에서 다시 살아남으셨던 일본군성노예 피해자 할머니들과 닮았습니다. 여러분이 일본군성노예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 손을 잡았을 때 처럼, 우간다 LRA내전 피해자들도 여러분이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손을 잡아주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2019 세계 전시성폭력 추방의 날 국제심포지엄 <끝나지 않는 고통, 전시성폭력 범죄의 재발방지를 위하여>

2019년 6월 20일

  • 2019. 6. 19. 수요시위에서 발언하는 우간다 생존자 아찬 실비아

  • 2019. 6. 19. 수요시위에서 발언하는 우간다 생존자 졸리 오콧

  • 2019. 6. 18. 포옹하는 우간다 생존자들과 이용수 할머니, 윤미향 대표

  • 2019. 6. 18. 우간다 김복동센터 계획 발표 후 기념촬영을 하는 우간다 생존자들 (졸리 오콧, 아베르 로즈, 아찬 실비아)과 이용수 할머니, 윤미향 대표

유엔은 안보리 결의안 1820호가 채택된 6월 19일을 기념하며, 종식되지 않는 전시성폭력 추방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을 촉구하고자 지난 2015년부터 매년 6월 19일을 세계 전시성폭력 추방의 날로 지정했습니다.

이에 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이사장 윤미향, 이하 정의연)는 세계 전시성폭력 추방의 날 (6.19)을 맞아 작년 제네바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무퀘게재단과 진행했던 국제심포지엄에 이어서 올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6월 17일부터 19일까지 교사워크숍을 개최하, 국제심포지엄, 1392차 수요시위 등 주간 행사를 개최하였습니다.

월요일 교사워크숍에 이어 18일(화) 오전9시30분터 오후5시까지 여의도 이룸센터 이룸홀에서 개최된 2019 전시성폭력 추방 주간행사 국제심포지엄 <끝나지 않는 고통, 전시성폭력 범죄의 재발방지를 위하여> 에서는 콩고 및 우간다 내전의전시성폭력 문제를 바탕으로 나비기금 지원사례와 전시폭력 근절방안에 대하여 생각을 나누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

이번 심포지엄 자리에는 특별히 길원옥 할머니와 이용수 할머니께서 자리하여 주셨습니다. 길원옥 할머니께서는 노래를, 이용수 할머니께서는 “인권운동하기 딱 좋은 나이입니다” 라며 열정적인 축사를 해주셨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대학교 공법학 교수이자 전 UN 여성폭력특별보고관인 라쉬다 만주 교수는 기조발제를 통해 전시성폭력 문제에 대한 UN내 논의의 경과를 소개하고, 시민사회•정치적 영역을 넘어 여성과 소녀의 현재적 삶을 고려한 젠더 관점을 포함하고 폭력의 근본적인 원인이 된 기존의 구조적 불평등을 변화시키는 ‘변혁적 배상’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정의기억연대는 지난 7년간의 나비기금의 활동을 보고하며, 전시성폭력 추방을 위한 시민들의 참여로 조성된 나비기금이 콩고민주공화국, 우간다, 베트남의 전시성폭력 생존자들을 정기적으로 지원하고 있으며 그 밖에도 IS 성노예 피해 여성, 팔레스타인 분쟁 성폭력 피해여성 등에게 전달되었음을 밝혔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나비기금을 통해 전세계의 전시성폭력 피해자들과 적극적이고 깊은 연대를 이루고 제2, 제3의 길원옥, 김복동이 탄생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다짐을 하였습니다.

정은진 포토저널리스트는 남수단과 나이지리아 등의 분쟁지역을 직접 방문하여 전시성폭력 피해자들을 만나고 나비기금을 전달한 경험을 공유하였습니다. 구출된 후에도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난민캠프에 거주하고 있는 생존자들은 생존과 자립을 위해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었음에도 자국으로부터 어떠한 도움도 기대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들에게 전달된 나비기금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자 연대의 마음을 담은 격려가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나비기금의 작은 날갯짓이 개인에게는 희망을, 세계에는 평화를 전하는 과정은 작은 관심과 기부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큰 힘이 될 수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콩고전시성폭력 생존자 지원단체 ‘레메드 (#REMED)’의 보나네 부제소 아킴 활동가는 콩고민주공화국 북키부에서 발생하는 무장단체에 의한 심각한 인권 침해, 특히 여성과 소녀들의 증가하는 성폭력 피해 상황에 맞서기 위하여 ‘레메드’에서 진행 중인 지원 프로그램을 소개하였습니다. ‘레메드’에서는 여성들과 소녀들이 겪는 어려움에 맞서기 위하여 성폭력 예방 메커니즘에 집중하였고, 피해자들을 모아 서로의 경험을 나눔으로써 트라우마와 사회적 낙인을 겪게 하는 고립과 은밀함을 종식시키고 치유와 희망을 위한 대화의 문을 여는 “마마 유시리카” 접근법으로 이를 구체화하였습니다. 나비기금은 어린이들에게 학비를 지원하고 프로젝트를 마련하기 위한 자금으로 활용되는 등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전시성폭력 피해자들을 고용하여 가방을 제작하고 판매함으로써 이들의 자립을 돕는 단체인 ‘웬드아프리카(#WendAfrica)’의 대표 졸리 그레이스 레이커 오콧은 전시성폭력 생존자로서 겪은 개인적인 경험을 나누고 다른 피해자들을 돕기 위한 지금까지의 노력을 소개하였습니다. 북부 우간다의 반군 단체인 ‘신의 저항군(LRA)’에 납치되었던 졸리 대표는 탈출에 성공한 후 ‘신의 저항군’의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일생을 바쳐왔습니다. 수많은 국제기구와 접촉하고,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세계에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전하고, 장학금 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많은 활동을 하였지만 목표는 항상 전시성폭력의 생존자들을 강인하고 자립적인 여성으로 성장시키는 것 하나였습니다. 졸리 대표의 발표는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알리고 피해자들을 위한 강한 지지를 형성하여 여성들이 삶의 주체성을 갖도록 지원하는 것이야말로 새로운 세대들이 같은 고통을 겪지 않고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도록 하기 위한 방법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었습니다.

‘골드위민비전 인 우간다(#GoldenWomenVisioninUganda’의 대표이자 제1회 김복동평화상 수상자인 아찬 실비아 오발 대표 또한 전시성폭력 생존자로서의 개인적인 경험과 함께, 현재 진행중인 우간다의 전쟁 및 젠더폭력의 생존자들과 아이들에 대한 지원 사업의 성과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에 대한 고민을 나누었습니다. 실비아 대표는 전쟁 생존자 지원 모임을 만들고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알리기 위해 법안을 의회에 상정하였으며, 제1회 김복동평화상 상금과 나비기금으로 전시성폭력 피해자들의 자립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피해자들을 위한 음식과 치료가 부족한 상황이며, 사회적 낙인과 차별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실비아 대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피해자/생존자 집단이 정부의 정책수립과정에 직접 관여하여 당사자의 권리를 옹호하고 배상프로그램을 이행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우간다의 전시성폭력 피해자 지원 단체인 ‘챤 르웨데 페 (#CanRewedePee)’의 아베르 로즈 총무는 나비기금을 통해 자녀들의 학비, 주거공간의 임대료, 식비, 의료비 등을 지원하고 저축 조합을 운영할 수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너무 비싼 식비로 인한 거주공간 부족 등의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고 호소하였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로즈 총무는 그들이 납치되었을 때 겪었던 고통을 자신의 아이들을 비롯한 그 누구도 겪어서는 안된다는 내용을 담은 노래를 직접 부르며, 전시성폭력 근절을 향한 간절한 소망을 노래하였습니다.

콩고민주공화국과 우간다에서 먼 거리를 달려와준 네 분의 발표는 각국의 상황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전달함으로써 전시성폭력이 역사 속의 이야기이거나 혹은 전혀 관계 없는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와 같이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그 누구에게라도 일어날 수 있는 폭력이라는 것을 일깨워주었습니다.

제2회 김복동평화상 수상자이자 코소보의 전시성폭력 생존자로서 코소바고문피해자재활센터에서 활동하고 있는 바스피에 크라스니치-굿맨 활동가는 과거의 기억을 반복적으로 떠올리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같은 피해를 당한 사람들을 돕고, 가해자를 처벌하여 사법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면 이를 감수하고서라도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전시성폭력 경험을 들려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였습니다. 또한 그 동안 여러 상을 받았지만 비슷한 범죄를 당한 피해자가 주는 상이기에 김복동평화상이 가장 소중하게 느껴진다는 감상을 전하기도 하였습니다.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는 <일본군성노예제 생존자들의 #me_too, 전시 성폭력 피해 재발방지를 위한 #with_you로> 발표를 통해 침묵의 피해자에서 목소리의 주체로 나선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세계 곳곳에서 여성들이 겪고 있는 더 많은 이야기를 만나 목소리를 확대해오고 함께해온 과정은 한 피해자의 목소리가 다른 피해자들에게 목소리를 내게 하는 #me_too와 #with_you와 같은 연대가 이루어지는 과정이었으며, 전시성폭력 피해를 재발시키지 않을 근본적인 시스템의 변화를 위해서는 결국 더 많은 연대와 교류가 필요함을 강조하였습니다. 또한 이를 위하여 정대협 30주년을 맞이하는 내년 우간다 김복동센터를 건립할 것임을 밝혔습니다.

윤미향 대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목소리와 삶, 그리고 운동의 역사는 지구 반대편인 우간다에서 오랜 내전기간 동안 힘겨운 삶을 살아왔음에도 사회변화의 주체로 성장하고자 하는 우간다 전시성폭력 피해 여성들에게 계승될 것이며, 심포지엄의 참가자들 모두가 생존자간의 연대, 전 세계의 인권•평화운동가들의 연대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를 바꾸어나갈 시작에 대한 목격자이자 주체자가 되어주길 부탁하고 당부하였습니다.

이에 이어 이용수 할머니께서는 역사의 산 증인으로서 윤미향 대표와 함께 우간다를 돕고 싶다는 참여의 마음을 표명하셨습니다. 이후 제1회 김복동평화상 수상자인 아찬 실비아 오발 골든위민비전 대표가 일본정부에는 일본군성노예제 범죄 인정과 공식사죄 및 법적 배상을, 유엔 등 국제사회에는 세계 각지 전시성폭력 피해자들의 권리를 회복하고 정의가 실현될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강구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낭독함으로써 국제심포지엄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아래는 국제심포지엄 결의문 한,영 전문입니다.

[2019 세계 전시성폭력 추방의 날 기념 국제심포지엄 결의문]

유엔은 지난 2015년 총회에서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1820호가 채택된 6월 19일을 ‘세계 전시성폭력 추방의 날(International Day for Elimination of Sexual Violence in Conflict)’로 지정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1820호는 무력분쟁이 여성에 끼치는 영향을 의제로 채택하고 분쟁 후 평화구축 과정에 여성들의 전면적 참여보장 등을 담은 1325호 결의안 채택 8년 뒤인 2008년에 채택된 결의안으로 국제 평화안보 유지, 성폭력을 전쟁무기로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그 의미가 크다.

유엔에서 전쟁과 여성인권 문제에 주목하고 인식변화를 만들어 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은 다름 아닌 일본군’위안부’ 생존자들이었다.

특히 보스니아 내전 등 각종 내전과 무력분쟁으로 인해 많은 여성들이 성폭력피해로 고통 받고 있었던 1992년 황금주 할머니의 유엔 인권소위원회 증언, 1993년 김복동 할머니의 세계인권대회 증언은 유엔과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국제사회가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전시성폭력 문제해결을 위한 가해자들의 책임에 대해 목소리를 조금씩 높여가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생존자들은 전시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인권기준 수립과 재발방지에 기여했다.

뿐만 아니라 일본군’위안부’피해자들이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반세기가 넘는 침묵을 깨고 가해국 일본정부를 향해 ‘전쟁범죄 인정’과 ‘공식사죄.배상’,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외치며 정의를 요구해 온 용기 있는 ME TOO는 30여 년이 지난 지금 저 멀리 콩고, 우간다, 코소보를 비롯한 각지의 전시성폭력 피해자들의 ME TOO로 이어졌다.

그러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각종 결의안 채택에도, 세계 전시성폭력 추방의 날 지정에도 불구하고 세계 곳곳의 무력분쟁과 갈등은 끊이지 않고 있으며, 그 속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 범죄 또한 지속되고 있다. 30여 년동안 포기하지 않고 외쳤던 일본군성노예제 생존자들의 인권회복은 지연되고 있다.

진실, 정의, 배상, 재발방지라는 피해자들의 권리는 보장되지 않고 있으며, 피해자들을 위한 정의실현을 위해 반드시 이행되어야 할 가해자들에 대한 불처벌 관행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남아있다.

이제는 일본군’위안부’피해자들의 ME TOO에, 세계 전시성폭력 피해자들의 ME TOO에 범죄자들의 인정과 사죄, 법적 배상이 이루어지도록 각국 정부와 국제사회는 응답해야 한다.

‘다시는 우리와 같은 피해자들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일본군’위안부’피해자들이 외쳐왔던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 여성인권이 동등하게 존중 받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김복동이 되고, 전시 성폭력 피해로 고통 받았으나 아직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한 ‘그들’이 되어야 한다.

이에 세계 각지에서 이 자리에 모인 우리들은 이 땅에서 전시성폭력을 끝장내고 피해자들의 정의실현을 위해 다음과 같이 촉구한다.

1. 일본정부는 유엔 인권기구들의 권고대로 일본군성노예제 범죄 인정, 공식사죄.법적배상, 재발방지 대책마련 등을 통한 일본군’위안부’문제의 영구적 해결을 위한 모든 조치를 이행하라!

1. 유엔 등 국제사회는 콩고, 우간다, 코소보를 비롯한 세계 각지의 무력분쟁.전쟁 중 발생한 성폭력 피해자들의 배상, 원상회복, 재발방지에 대한 권리를 포함한 피해자들을 위한 정의가 실현될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강구하고 이행하라!

2019년 6월 18일 2019 세계 전시성폭력 추방의 날 기념 국제심포지엄 참가자 일동

우간다 방문기! 내전 생존자들의 목소리

2019년 12월 3일

정의기억연대는 올 2월 우간다 나비기금 수혜단체 방문에 이어 두 번째로 우간다 굴루를 찾아, 11월 17일부터 28일까지 우간다 내전 생존자 인터뷰를 <뉴스타파>와 함께 진행했습니다!

11. 19.~20.

정의연 활동가들은 17일 늦은 밤 인천을 출발하여 19일 오후 북 우간다 굴루에 도착했습니다.
도착 직후 우간다 내전 관련 다큐 제작을 위해 동행한 뉴스타파 촬영팀과 함께 골든위민비전인우간다 대표 아찬 실비아 오발의 집을 방문해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지난 2월 저희들을 반갑게 맞아주었단 실비아의 가족들은 식구처럼 저희들을 반겨주었습니다.
실비아와 인터뷰를 콩해 김복동 할머니는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또 우간다 내전 성폭력 생존자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20일 오전에는 부지를 둘러보고 현재 부지를 관리해주고 있는 가족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아직 본공사가 시작되기 이전인 관계로 키큰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있는 부지 주변으로 땅의 경계를 알리는 표식이 세워져있었고, 골든위민비전인우간다 생존자들은 부지내에 작은 텃밭을 만들어 카사바, 콩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오후에는 엄청난 양의 비가 퍼부었지만 골든위민비전인우간다 회원들과 모임을 진행하고 아촐리 부족 왕의 총리를 면담했습니다.
면담에서 총리는 우간다의 문화와 법 체계를 존중하고 피해자들을 지원해준다면 언제든지 지원을 환영한다고 말한 후 이후에도 협력적인 관계로 센터 건립을 포함한 피해자들을 위한 정의연의 활동을 지지해주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어 생존자 오팀 사뮤엘, 크리스틴씨와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일정을 마무리 했습니다.

  • 마가렛

11.21.

우기에서 건기로 넘어가는 계절인탓에 흩뿌리는 비와 먹구름 낀 하늘로 시작한 굴루의 아침날씨로 오늘 일정이 잘 진행될까 걱정이 한 가득이었지만 오전이 되자 구름은 사라지고 뜨거운 햇살이 우리를 반겨주었습니다.

오전 10시 굴루 광역시 산하의 굴루 지역정부의 대표인 LC5의 요청으로 면담을 진행했습니다.

LC5는 정의연이 골든위민비전인우간다와 함께 굴루 지역의 전쟁 중 성폭력 피해자들과 그 자녀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는것에 대해 지지를 표명하고 향후 관련 계획을 협력해서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는 굴루 정부는 피해자들이 지역사회에 다시 통합되어 가치있는 사람으로서 다시 삶의 희망을 갖고 생활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피해여성들이 함께 모여 치유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는 희망을 전했습니다.

또한 피해여성들에게 적은 비용으로 집을 제공하는 기술을 소개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피해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의견을 제안하며 정의연과 골든위민비전인우간다의 프로젝트를 통해 지속가능한 지원의 방법을 같이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전달했습니다.

이어 오후에는 생존자인 마가렛씨의 집을 방문하고 인터뷰를 진행하고 생계를 위해 마가렛씨가 판매하고 있는 바나나를 구입하여 지역의 이웃들과 나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 에미

  • 루시

11.22.

오늘은 나비기금 수혜단체 중 하나인 웬드 아프리카와 함께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웬드 아프리카는 전쟁 피해자인 졸리씨가 설립한 사회적기업으로 우간다 내전 중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했던 생존자들을 고용하여 가방, 인형 등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여 수익을 만들고 생존자 자녀들의 학비지원, 상담 등을 제공하여 그들의 심리적 치유와 함께 경제적 자립을 돕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첫번째로 졸리씨의 남편이자 웬드아프리카의 사업 총괄을 담당하고 있는 에미씨를 인터뷰하고 우간다 내전 피해자들에 대한 차별과 낙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생존자의 남편으로서 어떻게 전시 성폭력 생존자들을 지지하는 활동을 하게되었는지 등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두번째로는 약7년동안 지휘관의 34명의 아내 중 한명으로 성노예 생활을 강요 받았던 생존자 루시씨와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나비기금지원이 얼마나 그의 삶에 도움이 되는지 감사인사를 전하며 한국 등에서 직접 피해사실을 증언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면 국제사회로부터 더 많은 지지를 받응 수 있을 것이라고 의견을 말해주기도 했습니다.

세번째로는 7년간 북부 우간다 지역의 주민들이 정부에 의해 이주되어 만들어진 IDP캠프에서 지원활동을 했던 조씨와 인터뷰를 갖고 본인이 직접 목결했던 피해자의 상황 그리고 문제해결을 위해 어떤 노력들이 필요한지에 대한 의견을 들었습니다.

한편 어제 약속한대로 LC5 마틴씨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우간다와 내전상황에 대한 개요 그리고 정부차원의 노력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 아동 플로렌스

  • 모세스, 도라, 빈센트

11.23.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쏟아졌습니다. 오전에는 우간다 내전 참상을 알렸던 단체 Invisible Children이 제작한 영화 Tony 를 보고, 오후에는 나비기금 수혜단체 중 하나인 챤 르웨데 페를 방문했습니다.

챤 르웨데 페는 ‘가난하게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뜻으로, 우간다 내전 중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했던 피해여성들을 위해 저축조합을 운영하고, 생존자 자녀들의 학비지원, 상담 등을 제공하는 자생모임입니다.

원래는 마을에 있는 나무 아래서 모이지만, 오늘은 비가 너무 많이 내려 마을에 있는 학교에서 모였습니다. 정의기억연대 활동가들이 도착하자마자 큰 환호와 노래로 맞아주고, 스스로의 이야기를 녹여 담아 준비한 연극을 보여주었습니다.

연극 속 생존자들은 감금 중 성폭행으로 낳은 아이들과 탈출해 집으로 돌아가지만, 반군의 자식을 낳았다는 이유로 가족으로부터 쫓겨납니다. 홀로 아이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암담한 현실에 절망하지만 다른 생존자가 챤 르웨데 페를 소개해주고, 생존자들 모두가 힘을 합쳐 살아갑니다.

이후 생존자들의 자녀인 모세스, 도라, 빈센트가 감금 중 성폭행으로 태어난 아이들이 살아가며 겪는 멸시와 차별에 대해 증언해주었습니다. 자녀들은 반군의 아이라며 친척들이 쫓아내거나 새아빠로부터 학대를 받고, 이웃 아이들과 놀지 못하게 따돌림받고, 학교에서도 반군 리더의 이름인 ‘코니’라고 놀림 받으며 차별받았다고 합니다. 나비기금을 통해 학비를 낼 수 있던 자녀들은, 학교를 무사히 마치고 어머니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꾸준한 연대를 부탁했습니다.

두번째로는 챤 르웨데 페 회장 아동 플로렌스 씨와 생존자들의 연대가 어떻게 낙인을 벗어나도록 돕는지, 국민들을 보호할 책임이 있던 우간다 정부가 생존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후 모세스와 어머니 아족 폴린, 도라와 어머니 아베르 로즈와 함께 생존자의 자녀로서 겪은 어려움에 대해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모세스는 어머니처럼 전쟁 중 성폭력을 겪는 여성들과 아이들을 위한 인권변호사가 되기 위해 대학에 가고 싶다는 꿈을 나눴습니다.

해질녘까지 이어 진 인터뷰를 마친 후 나비기금을 전달했습니다.

  • 아그니스

11.24.

오전에는 사람들이 모이는 굴루 시내를 방문했습니다. 이후 골든위민비전인우간다 대표 아찬 실비아 씨와 남편 데니스 씨를 인터뷰하며 우간다 내전 중 LRA반군에 의해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들이 겪는 차별, 피해자의 가족으로서 겪었던 어려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후 며칠 전 인터뷰했던 생존자 크리스틴 씨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또 다른 생존자 아그니스 씨와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아그니스 씨는 9살이던 2005년 반군에게 납치되었고, 반군 지휘관 중 한 명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합니다. 아그니스 씨가 13살 때 첫 생리를 하자 이 반군 지휘관은 아그니스 씨와 강제로 결혼했다고 합니다. 2012년에 돌아 온 아그니스 씨는, 감금 중에 낳았던 아이 둘의 학비를 댈 수 없어 친척도 아닌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고 지금은 돌아와서 만난 새남편 사이에서 낳은 아이 토니와 둘이 살고 있습니다. 새남편은 아그니스 씨가 피해자란 걸 알자 떠나버렸다고 합니다.

겨우 7년 전에 돌아온 아그니스 씨는 피해경험을 이야기하는 게 힘들지만, 다른 생존자들과의 모임을 통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아이 앞에서 울고 싶지 않다며 눈물을 참은 아그니스 씨는, 더 많은 사람들이 우간다 내전에 대해 알게 되어 생존자들에 대한 지원이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인터뷰에 응했다고 합니다.

  • 웬드아프리카

  • 골든위민비전

11.25.~26.

우간다 굴루 지역 아이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각 3,000달러와 1,000달러를 골든위민비전인우간다와 웬드아프리카에 전달했습니다.

SCARLET LETTER IN UGANDA AND KIM BOK DONG 우간다 생존자들과 기억하는 김복동 할머니 1주기

2020년 3월 4일

우간다 생존자들과 기억하는 김복동 할머니 1주기

https://youtu.be/llQGl10XvfY

지난 11월, 정의기억연대는 우간다 #신의저항군(#LRA) 내전으로 성폭행, 성노예 피해를 입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인터뷰하고, 우간다 생존자들을 위한 쉼터(우간다 김복동센터)를 세우고, 김복동 할머니의 희망을 기억하는 관련 다큐를 제작하기 위해 #뉴스타파 와 함께 우간다 글루를 방문하였습니다.

비록 일본정부와 우간다정부의 생존자들에 대한 위협 때문에 생존자지원단체와의 협의 하에 센터 계획을 보류하고, 미국에 김복동센터를 세우는 걸로 계획을 변경하였지만, 그 과정에서 생존자들이 농사를 짓고, 활동을 할 수 있는 땅 14,500평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협력해 준 생존자들, 생존자지원단체 활동가들에게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