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 활동가의 할머니 방문기
2022년 1월 20일더피 활동가의 할머니 방문기

오늘은 더피, 포카, 행 세 활동가가 경기도에 사시는 할머니를 찾아뵀습니다. 코로나19가 심해지기도 했고, 할머니께서 음식을 잘 씹지 못하여 외식이 불편한지라 할머니 댁 근처에서 활동가들끼리 점심을 먹고 할머니를 뵙기로 했지만 저희는 내심 걱정이 됐습니다. “오늘도 할머니께서 분명 무언가를 주실 텐데..”라면서 말입니다. 그만큼 할머니는 저희 활동가들에게 이것저것 주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요.
할머니 댁에 도착했습니다. 세 활동가 모두 손을 깨끗이 닦고 할머니 앞에 둘러앉으니 할머니는 포카 활동가를 놀리기 시작하셨습니다. “전화하는 마포는 어딨어?” 하시기에 포카가 “저잖아요!” 하니 “근데 왜 이렇게 달라!” 하십니다. 더피, 포카, 행이 깔깔대며 무엇이 다른지 물었더니 “전화할 땐 날 녹이려고 막 할머니~ 이러잖아!”라고 하셨습니다. 부쩍 귀가 안 좋아진 할머니를 배려하여 큰 목소리로 애교 가득 담아 전화한 것을 두고 놀리시는 것 같았습니다.
머지않아 할머니는 “앗, 내가 아무것도 안 줬구나” 하시면서 냉장고 쪽으로 가셨습니다. 다행히 탄수화물류가 빠진, 박카스 세 병과 비타500 세 병이 오늘 저희의 할당량이었습니다. “저희는 세 병이면 돼요!”라는 저희의 말씀에도 “박카스는 음료가 아니야! 약이야!”라고 하시니 저희는 다 마실 수밖에요…
할머니는 90대임에도 옛일을 아주 또렷하게 기억하십니다. 몇 가지만 공유하자면, 몇 살 때 고향에서 끌려가신 이야기, 해방됐지만 ‘해방’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는 이야기, 일본 군인들이 ‘위안부’들을 다 방치한 채 그냥 떠나간 이야기, 해방 후 고향까지 혼자 돌아온 이야기 등이었습니다.
할머니께 여쭈었습니다. “할머니, 일본 정부에서 그런 일(일본군성노예제, 강제연행)이 있었고, 사죄한다고 하면 어떨 것 같아요?” 하니 “그럼 좋지!” 큰 목소리로 말씀하시는 할머니 모습에 지쳐 가던 저희는 다시 힘을 내기로 합니다.
할머니는 오랫동안 이야기하시고 나니 지쳐 보이셨습니다. 저희는 눈치껏 이제 들어가야겠다며 일어서는데 역시나… 할머니는 비타500을 두 박스(각 40병)를 꺼내고 계셨습니다. 한 박스면 된다며 들고 나오는데, 할머니께서 힘겹게 다른 한 박스를 들고 나오시는 게 아닙니까. 저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한 박스를 마저 챙겼습니다. 할머니의 사랑이 듬뿍 담긴 비타500 80병을 안고 저희는 그렇게 돌아왔습니다.
오늘 할머니 방문 이후 유독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강제연행은 없었다’는 일본 정부, 한국 극우세력의 수요시위 방해, 피해생존자들을 향한 혐오 발언들, ‘학문의 자유’라며 역사부정을 서슴지 않던 학자들이 떠오르며 그럼에도 우리의 운동이 계속돼야 하는 이유를 재확인하였습니다. 그리고 할머니가 앞으로도 오래오래 건강하셔서 저희가 이 운동을 멈추지 않도록 함께해주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