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보다 정확하다?! 할매 네비(5월 포항 할머니 방문기)
2022년 5월 19일20220519 포항 박필근 할머니 방문기
5월 19일, 활동가 행, 포카, 기린, 낙영이 포항에 계신 박필근 할머니를 찾아뵈었습니다.
저 기린에게는 지난 11월(링크) 이후 두 번째 할머니 방문이었는데요, 그동안 화면 너머로만 뵈었던 박필근 할머니를 처음으로 직접 뵌다고 생각하니 설렘과 긴장감이 동시에 느껴졌습니다.
할머니와의 약속대로 12시 전까지 포항에 도착할 수 있도록, 이른 아침 기차를 타고 서울역을 출발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언제나처럼 저희를 기다리시며, ‘어디 쯤 오고 있나’하고 여러 번 정의연 사무실로 전화를 주셨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만나, 더 오래 함께 있고 싶다는 할머니의 마음이 느껴져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사무실과의 통화를 마치고 나면 다시 바깥 마루로 나가 저희를 기다리시는 할머니. 이동 중인 저희가 할머니께 전화를 드릴 때면, 이미 밖에 나가 계신지 전화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여러 차례 엇갈리는 전화에 애가 타기도 했습니다.
서둘러 할머니 댁에 도착하니, 할머니께서는 이미 나갈 채비를 마치고 바깥 마루에 앉아 저희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오늘은 평소 필근 할머니 방문 루틴(링크)과 달리, 할머니를 모시고 따님 댁을 방문하는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할머니께서 저희를 보시고 “처음으로 오는 사람 있는교?”하고 물으시자, 포카가 저와 낙영을 할머니께 소개해주었습니다. 이어서 “할머니, 저는 아시죠?”하고 묻는 포카의 애교 섞인 질문에 할머니는 “모릅니다~”하고 농담도 하십니다.

할머니를 모시고 따님 댁에 가는 길. 잠시 슈퍼에 들러 할머니께서 알려주신 필요한 물품들을 구매했습니다. 따님 댁까지는 초행길이라 조심조심 네비게이션을 보며 가고 있는데, 갑자기 할머니께서 창문을 두드리시며 “이리(왼쪽으로) 들어가소, 이리!”하고 외치셨습니다. 네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것과는 다른 길이었습니다. 잠시 망설인 끝에 방향을 틀어 할머니께서 알려주신 길로 들어가 보니, 정말로 따님 댁으로 가는 지름길이 나왔습니다. 활동가들이 “우와, 길을 다 기억하고 계시네요!”하고 놀라자, 할머니께서는 별거 아니라는 듯 “이런 거(네비게이션) 다 소용없다.”하고 시크하게 말씀하십니다.
‘할매 네비’ 덕분에 무사히 따님 댁에 도착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따님 댁 구석구석 저희에게 안내해주시며 “이렇게 잘해놓고 산다~”하고 자랑스럽게 말씀하셨습니다. 할머니 당신께서 옛날에 자식들을 많이 고생시켰다며 눈물을 훔치셨다던 이전 방문기(링크)의 내용이 떠올라 가슴이 찡해졌습니다.

(필근 할머니와 따님의 손)
그 사이 따님은 저희를 위해 커다란 상이 꽉 차도록 푸짐한 점심 식사를 차려주셨습니다. 서울에선 쉽게 맛볼 수 없는 진수성찬 앞에서 부지런히 젓가락을 움직이는 활동가들의 모습을 보고, 할머니께서는 “맛있게 먹어서 좋다~”하며 웃으셨습니다. 그 말씀에 왠지 할머니의 손주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어, “할머니, 저는 두 그릇 먹었어요!”하고 자랑도 해보았습니다.
식사 후에는 할머니와 따님, 활동가들이 다 같이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따님께 전해 듣는 할머니의 이야기는 또 다른 느낌이 들었습니다. 할머니는 저희의 방문 일정이 정해지면 늘 따님께 ‘우리 정대협이’가 온다고 말씀하신다고 합니다. 할머니도 따님도, 오랜 시간 함께해 온 정의연 활동가들을 식구처럼 여겨주시는 것이 느껴져 감사했습니다.

(사과를 써는 포카의 현란한 손놀림)
따님께서 직접 재배하신 달콤한 사과를 먹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따님의 뛰어난 요리 솜씨가 할머니께 물려받은 것이었음이 밝혀졌을(?) 즈음, 할머니께서 주섬주섬 모자를 쓰시며 집으로 돌아가자고 하셨습니다. 행 활동가가 “기차 시간까지 아직 여유 있어서 괜찮아요~”라고 안심시켜드렸지만, “나 데려다 주고 또 가야 하는데…”, “서울은 천리길 아이가” 하시며 먼 길을 돌아가야 하는 저희를 걱정하셨습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할머니와 함께 따님 댁을 나섰습니다.
‘할매 네비’의 안내를 따라 다시 할머니 댁으로 향하는 길. 능숙하게 핸들을 잡은 포카에게 “차도 잘 몰고 잘한다~”하고 넌지시 말씀하십니다. 할머니의 칭찬에 괜히 무면허인 저까지도 뿌듯해 하고 있던 찰나, 이번엔 할머니의 눈에 진로를 방해하는 앞차의 모습이 들어왔나 봅니다. “저 차는 뭐 (운전을) 이렇게 하노”하고 일침을 놓으시는 할머니의 말씀에 차 안 가득 웃음이 울려 퍼졌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방으로 들어가시더니 저희에게 감주를 내어주셨습니다. 마지막까지 저희 활동가들을 위해 하나라도 더 챙겨주시려는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할머니의 일상을 조금이나마 함께할 수 있어 뜻깊은 하루였습니다. 따님을 비롯한 가족 분들께도, 저희 활동가들에게도 아낌없이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할머니. 할머니의 그 애정 어린 눈빛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