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숨 작가, 김복동·길원옥 할머니 증언 소설 출간

0001년 1월 1일

김숨 작가,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 증언 소설 출간

  • 오늘 8월 14일 6차 세계 일본군‘위안부’ 기림일에 맞춰 김숨 소설가가 소설 <한 명>, <흐르는 편지>에 이어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를 취재한 증언소설을 발표했습니다. 김숨 작가는 몇 개월 동안 할머니들이 기거하시는 평화의 우리 집 쉼터에 방문하여 할머니들을 보고 할머니들과 대화를 나누며 소설을 집필했습니다.

  • 할머니들은 역사 속에서 끔찍한 일본군성노예제의 희생자였지만 현재는 오늘을 용기 있게, 그리고 즐겁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이웃의 할머니입니다. 그리고 그 고통과 아픔을 많은 사람과 연대하며 또 다른 피해자들을 지원하며 다시는 그들과 같은 희생자가 생기지 않도록, 전시성폭력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되도록 힘껏 외치는 여성인권운동가입니다.

  • 할머니들의 삶이 역사책 속에 존재하는 옛날이야기가 아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로 다시 태어나는 김숨 작가의 소설을 통해 한 사람의 고통이 그저 개인의 것이 아닌, 우리가 함께 답하고 외쳐야 할 모두의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 일본군성노예제 피해라는 고통 속에 머물지 않고 다른 전시성폭력 피해자들과 약자, 소수자들과 연대하며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여성인권운동가가 된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의 목소리를 더 많은 사람들이 읽고, 듣고, 공감하고, 함께 꿈꿀 수 있도록 많은 취재와 보도 바랍니다.

김복동 증언소설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

판형 : 사육 변형판 / 사이즈 : 104*182(양장) / 페이지 : 224P 값 : 12,000원 / 출간일 : 2018년 8월 14일 ISBN : 978-89-7275-904-1 03810 / 978-89-7275-8905-8(세트)

_김복동은 스물세 살 때 『전생록』을 가졌다는 할아버지를 찾아가 묻는다. 자신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고통을 받는 것인지. 할아버지가 대답한다. 김복동은 전생에 옥황상제의 딸이었고, 자식을 다 죽인 벌로 먼 땅으로 쫓겨났다고.

“이해할 길이 없었어. 전생이 아니면, 전생에 지은 죄가 아니면, 내가 겪은 일들을.”

김복동의 물음에 아무도 답해주지 않았다. 국가가, 사회가, 우리가 침묵했기 때문에 김복동은 스스로 답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전생에서. 현생에서는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전생으로 둘러대지 않고서는 현생에서 벌어진 일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 소설이 가지는 의미는 여기에 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는 역사 속의 한 페이지가 아니다. 그들이 평생에 걸쳐 혼자 묻고 혼자 답해온 것을 이제는 국가가, 사회가, 우리가 함께 묻고 답해야 한다. 그러자면 우선 폭력의 역사 속에 묻혀버린 한 존재의 경험과 기억을 되살려내야 한다._

▲ 본문 중에서

_볼 수 없어도 바다가 그리워. 볼 수 있는 걸 그리워하는 건 그리워하는 게 아니야. 아니면 정말로 그리워하는 것이거나. 병病이 되도록. 갈 수 있겠지……. (p. 32-33)

진실로, 알아야 해. 손이 모자란다고 했어. 군복 만드는 공장에 손이 모자라서 내가 가야 한다고. 그때 내 나이가 열다섯. (p. 36)

나는 감정이라는 걸 몰라. 외로움 같은 거 안 느껴, 못 느껴. 나 외로운 건 못 느끼는데, 남 외로운 건 느껴. 느끼고 싶지 않아도 느껴져. 맡고 싶지 않아도 맡아지는 냄새처럼. 외로운 사람을 보고 있으면 힘들어. 그래서 눈이 멀었을까. (p. 43)

처음에 내가 엄마에게 말했을 때 거짓말이래. 그런 일을 겪고 사람이 살 수는 없다며. 그런 일, 내가 겪은 일. 나는 알아 내가 겪은 일을 잊은 적 없어. (p. 44-45)

어느 날 동네 구장하고 반장이 우리 집을 찾아왔어. 누런 옷 입은 일본 사람을 데리고. 그들이 엄마에게 말했어. “데이신타이에 보내야 하니 딸을 내놓아요.” “이 집에는 아들이 없으니 딸이라도. (p. 48-49)

엄마가 끝까지 거절을 못 했어. 그래도 엄마를 원망할 수가 없어. 딸을 내놓지 않으면 배급이 끊기니까. 그들이 그랬어. “반역자가 되고 싶어요?” “딸을 내놓지 않으면 고향에서 못 살 줄 알아요.” 그래서 내가 가겠다고 했어. 군복 만드는 공장이라는데 죽기야 할까 싶었어. (p. 50)

사랑이라는 말을 입에 담아본 적 없어, 일생을 ……. 37년을 내 옆에 그림자처럼 있었던 사람에게도 그 말을 안 했어, 못 했어. 끝까지, 사랑이라는 걸 모르고 살았어. 못 견디게 보고 싶은 게 뭐야? 죽을 만큼 보고 싶은 게. 사랑은 내게 그 냄새도 맡아본 적 없는 과일이야. 빛깔도 본 적 없는. (p. 63)

말레이시아에 있을 때는 산 너머 군부대로 출장을 가기도 했어. 그곳 산은 높지 않고 비스듬하니 길고 깊었어. 여자 여남은 명이 함께 갔어. 총을 든 군인들이 우리 앞에도, 뒤에도 있었어. 군인들이 천막으로 임시 위안소를 만들고 우리를 기다렸어. 합판으로 짠, 관 棺 같은 곳에 들어가 군인을 받았어. 개구리처럼 두 다리를 오그리고 군인을 받았어. 아침부터 저녁까지. 군인들이 천막을 들추고 소리치고는 했어. 빨리빨리! 저녁이 되면 두 다리가 콘크리트 기둥처럼 굳어서 펴지지 않았어. (p. 102-103)

나는 집이 없어, 밤마다 집을 지어. 집을 짓고, 부수고, 짓고, 부수고……. 다들 잠든 시간에. 내가 지은 집들은 봄날 나비와 같아, 날아가버려…… 내가 그 안으로 발을 들여놓으려고 하면. 벽돌 한 장 없이 지은 집이어서. 어제도 집을 짓고, 부수고, 짓고, 부수고…… 시계를 보니 새벽 세 시. 그래도 잠이 안 와서 집을 짓고, 부수고, 짓고, 부수고…… 시계를 보니 새벽 다섯 시. (p. 104-105)

군인들에게 끌려다닐 때, 나는 나를 찾지 않았어. 해방되고 다들 나를 찾을 때도, 나만 나를 찾지 않았어. 나 없이 살았어, 나 없이……. (p. 135)

내가 나를 찾으려고 하니까 큰언니가 말렸어. 조카들 생각해서라도 제발 가만히 있으라고 했어. 그래도 나를 찾고 싶었어. 예순두 살에 나를 찾으려고 신고F했어. 신고하고 큰언니가 발을 끊었어. 우리 아버지, 엄마 제사 지내주는 조카들까지.(p. 136)

내가 싸우고 있어……. 믿을 데가 없어……. 의지할 데가 없어……. 죽을 복. 자다가 고통 없이 죽는 거…… 그거 하나 바라…… 몸이 너무 고달프니까…… 정신이 나가 허우적거리는 병이 올까봐 두려워……. 내 나이 아흔셋…… 전생에 지은 업보는 다 치른 것 같아……. 업보를 짓고 싶지 않아, 마음으로도. 아무도 미워하고 싶지 않아, 아무도 원망하고 싶지 않아. 금방 끝날 줄 알았어……. 용서하고 떠나고 싶어. 번개처럼, 한순간. (p. 162-163)

한 엄마에게서 태어난 형제도 나를 이해 못 하는데 누가 나를 이해하겠어. 형제도 못 믿는 내가 누구를 믿겠어. 너른 밭이 있었으면……. 내 뒤에 아무도 없어. (p. 188)_

길원옥 증언소설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

판형 : 사육 변형판 / 사이즈 : 104*182(양장) / 페이지 : 168P 값 : 12,000원 / 출간일 : 2018년 8월 14일 ISBN : 978-89-7275-903-4 03810 / 978-89-7275-8905-8(세트)

_길원옥의 기억은 자주 어긋나고, 자주 끊기고, 더 자주 해체된다. 그것은 살기 위해서라도 과거를 잊어야 했기 때문이다. 잊지 않으면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잊지 않은 것은 ‘평안북도 평양시 서성리 76번지’라는 고향 집 주소와 중국으로 떠나던 날 그녀를 향해 외치던 남동생의 목소리. ‘누나- 빨리 갔다 와!’였다. 평생 혼자였고, 자신을 부끄러워했고, 죄책감에 시달렸던 길원옥은 일흔한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말을 하기 시작한다. 1991년 8월 14일, 일본군‘위안부’ 최초 증언자 김학순의 공개 증언 이후 용기를 낸 것이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테니까.”

인생을 마치기 전, 그들을 용서하고 편안히 떠나가고 싶다고 소망하지만 정작 용서를 구하는 이가 없는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더 늦기 전에, 그들의 생이 그리고 기억이 더 소멸되기 전에 누군가는 기록하고, 누군가는 읽고 기억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의 싸움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고, 이는 혼자 겪은 일이지만 함께 기억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_

▲ 본문 중에서

_피가 내 얼굴을 지웠어……. 열네 살이었을까, 열다섯 살이었을까. 군인이 뱀처럼 긴 칼로 내 머리를 내리쳤어. 정수리에 금이 가더니 피가 솟구쳤어. 내 얼굴을 지우며 피가 흘렀어. 그 피를 닦는 데 60년이 넘게 걸렸어. 밤이 되면 군인들이 왔어. 군인들만 왔어. 삭힌 콩잎 같은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었어 (pp. 22-23)

열세 살 나를 가지고 놀던 군인은 몇 살이었을까. 문구점에서 산 병아리를 가지고 놀듯 나를. 나는 세 개. 내 살굿빛 부리를 으스러뜨렸어. 날갯짓 한 번 못 한 내 날개를 꺾었어. 개나리 꽃잎 같은 내 발가락을 뭉갰어. 큰오빠보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군인이었어. 아버지보다도. 내 몸에서 피가 났어. 손바닥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무르팍이 아니라 다른 곳. 태어나 한 번도 피가 나지 않았던 곳에서. 내가 무서워서 울자 나를 번쩍 들어 공중으로 던졌어. 나는 날아올랐다 군화를 신은 발들 앞에 떨어졌어. (pp. 39-40)

낙원위안소에 온 첫날 악순 언니는 내게 물었다. “너는 무슨 죄를 지어서 조센삐가 되었지?” 조선말로 물었지만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아무 말도 못 했다. 나는 자신에게 묻고 묻는다. 너는 무슨 죄를 지어서 조센삐가 되었지? 정말, 나는 무슨 죄를 지어서 조센삐가 되었을까. (p. 26)

살아서 돌아오라고 빌어달라는 군인들이 있다. 그들의 어머니나 아내, 애인, 누이들은 너무 멀리 있으니까. 전투를 앞두고 겁에 질린 군인을 보면 나는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 빌어준다. 죽지 말고 살아 돌아오라고. 내가 빌어줄 때 그들의 어머니나 아내, 애인, 누이들은 뭘 하고 있을까. 쌀을 씻고 있을까, 바느질을 하고 있을까. 나는 살아 돌아오라고 빌어주면서도, 살아서 돌아올까봐 겁이 난다. 살아서 돌아와 다시 나를 찾아올까봐. 전투에서 살아 돌아온 군인들이 다시 나를 찾아오는 이유는 뻔했으니까. 살아 돌아온 군인들 대개는 반쯤 미치광이가 되어서 나를 짓뭉개고, 깨물고, 찔렀다. (p. 29)

아무 데도 가고 싶지 않아…… 꽃구경도 싫어. 나 우리 집 갈래. 나는 노래를 불러. 슬플 때도, 기쁠 때도, 심심할 때도, 원망스러울 때도. 새들이 날 가리며 우는 거 봤어? 한때 남들 앞에서는 노래를 안 불렀어. 숨어서 불렀어. 혼자 몰래 불렀어. 남들 듣는 데서 노래 부르는 게 흉 같아서. 내가 하는 건 다 흉 같았어. (p. 54)

말을 하면 아픈 데가 더 아파. 아픈 건 똑같아. 몸에 난 상처나, 마음에 난 상처나. 어떻게 하면 잊을까, 그 생각만 했어. 그래서 내가 지금까지 살아 있는 거야. (p. 85)

여자가 얼마나 아플지 내가 잘 알지. 여자가 당한 일을 나도 당했으니까. “말하고 싶지 않지?” “나도 말하고 싶지 않았어.”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했어. 나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그 끔찍한 일을 당하는 여자가 또 있으면 안 되니까.” “내가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테니까.” “내가 참으라는 것은 아픔을 참으라는 뜻이지 말을 참으라는 뜻이 아니야.” “말해야 해. 그래야 사람들이 알지.” (pp. 94-95)

좋은 말은 입속에 가두어두면 안 돼, 해야 해. 그 말을 들은 사람이 다른 데 가서 전하게. 좋은 말은 돌림 노래가 되어 떠돌고, 떠돌아야 해. 나쁜 말은 입속에 가두어둬, 소금처럼 녹아 없어질 때까지. (p. 97)

나는 혼자야. 사람이 혼자라는 게 아무래도 안 좋지. 사람은, 사람들하고 살아야 사람이야. 혼자라는 거…… 그건 혼자였던 사람만 알아. (p. 115)

나는 나를 사랑해서 죽지 않았어. 나를 사랑해서 오늘날까지 살 수 있었어.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나를 사랑해서 할 수 있었어. 너도 너를 사랑해. 네가 있어야 내가 있지, 내가 있어야 네가 있고. 그것이 내가 알고 있는 황금률이야. 내가 나를 사랑해야 용서도 할 수 있어. 나를 사랑하는 거…… 그것이 시작이야. 그리고 말해. 군인들이 천사가 될 때까지. (pp. 150-151)_